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경선후보 권지웅 출마선언문

2020-02-25

안녕하세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위축되는 요즘입니다.
다들 무탈하신지요.

이번 21대 국회의원 총선에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려 합니다. 

집을 사지 않으면 모멸 받는 사회. 집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이 ‘동등한 시민’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회입니다. 집을 사야만 안전한 주거를 보장하는 사회는 너무도 많은 사람을 소외시킵니다. 

어떤 형태로 살든 모멸 받지 않고, 주거계획을 세울 수 있고, 안전한 주거공간에 사람들이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집을 사야만 안전한 주거를 보장하는 사회는 이제 수명을 다했습니다. 

시민사회에서 정치로 활동의 운동장을 옮기면 하는 일도 달라지겠지요. 자주 접하는 것도 달라지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도 달라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만들어가고자 하는 세상의 모습, 삶의 모습이 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정치의 공간에서 또 다른 변화의 씨앗을 만들어가 보려합니다. 

함께 해갑시다. 서로 도우며 해가봅시다.

<더불어민주당 입당 기자회견>
- 일시 : 2. 26.(수), 오전 10시 30분
- 장소 : 국회 본청 정론관
- 입당자 : 권지웅 전 민달팽이유니온위원장 외 집 없는 청년시민 104명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경선후보 권지웅 출마선언문

집 없는 사람들의 정치를 시작합니다.

#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입당하는 100명의 청년들과 함께 ‘집 없는 사람들의 정치’를 시작하려 합니다. 


엘사라는 말을 아십니까? 엘에이치에 사는 사람을 폄하하는,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쓰이는 말입니다. 

저는 한국사회에서만 쓰이는 엘사에 대한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합니다.


임대주택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지만 주저하는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임대주택에 살게 되면 자신의 아이가 ‘엘사’라고 놀림 받을까 두려웠습니다. 어릴 적 놀림이야 어딜 가나 있을 수 있지만 그가 특히 미안했던 것은 자신의 아이가 겪을 놀림이 바로, 부모인 그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사’라는 말은 한국사회에서 주택소유자와 세입자의 처지가 얼마나 분명하게 구분되는지, 초등학교 교실에서 조차 보이는 말입니다. 아이가 이토록 어릴 때부터 세입자의 차별과 모멸을 겪으며 자란다는 것이 어떤 부모인들 마음 아프지 않겠습니까?  


# 세입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특수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입자로 살아가는 45%, 대한민국 국민 절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입자로 겪는 차별과 모멸은 단순히 감정적 불행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조적 불평등입니다. 입주자임에도 입주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고, 세입자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주거계획 조차 세우기 어렵습니다. 불법건축물이라 불리는 불법주택이 버젓이 중개소에서 홍보되고, 법상 똑같은 주택이어도 분양되는 주택은 허가되고 임대할 주택은 허가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입니다. ‘엘사’는 그 차별받는 ‘45%’의 다른 이름입니다.


# 집으로 모두가 불행한 사회

한국사회는 집의 소유여부를 떠나서 대부분의 사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집이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현관까지만 내 집이고 나머진 은행 꺼다'라는 자조적 농담처럼 사실상 저당 잡힌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집을 사려는 사람은 어디에 어떤 집을 살지, 사도될지 불안 합니다. 집을 빌려 쓰는 사람은 주거 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 불안합니다. 그마저, 몸 뉘일 곳이 아쉬운 집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집을 가지든, 가지지 않든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불행 언저리에 있습니다. 소수의 기쁜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도 다수의 사람들이 집으로 슬픈 사회입니다. 


#주택소유자도 세입자도 모두 존엄을 잃어버리는 사회

누군가 급한 매물을 싸게 내놓으면 “왜 네 마음대로 그 가격에 내놓았냐”고 따져 묻는 것이 익숙한 사회입니다. 임대주택 단지가 같은 학군이 되지 않게 하려는 부모와 자녀에게 세입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임대주택 입주를 망설이는 부모. 그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시세차익으로 자신의 월급 몇 배가 넘는 돈을 한 번에 벌었다는 사람. 옆자리의 동료는 그 소식을 알고도 내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함께 살아갑니다. 이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입니다. 


# 우리 사회는 집을 소유해야만 안전한 주거를 누릴 수 있는 사회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집을 소유해야만 하는 사회였습니다. 집을 샀을 때 우리는 많은 축하를 받습니다. 그것은 집을 소유하게 되었음에 대한 축하이기도 하지만, 집 없는 사람의 ‘서러움과 모멸을 벗어났음’에 대한 축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진 않습니다. 1980년부터 2015년까지, 35년간 자가 점유율은 단 1%도 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2%가 줄었습니다. 


# 소유해야만 하는 사회를 넘어서 어떤 주거든 충분하고 안전한 사회로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월급 33만원을 모아 5년짜리 주공아파트를 거쳐 6년째에는 내 집을 마련했던 제 부모님의 삶. 82년 치의 월급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겐 너무 먼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이토록 달라졌습니다. 2020년 이제는 집을 사야만 주거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사회에서, 어떤 주거의 형태로 살아가든지 모멸당하지 않고, 삶의 계획을 꾸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때입니다. 월세에서 전세, 전세에서 자가라는 계층화된 시각에서 벗어나 월세, 전세, 자가 모두 각자의 상황에 따른 선택으로 바라봐 주는 사회로, 어떤 주거이든 그 자체로 충분하고 안전한 사회로 이제는 변화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 빌려 쓰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

이제는 집이 없는 사람 모두를,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집을 사고자 하는 욕망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현재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이젠 세입자를 ‘빌려 쓰는 사람’이라 분명히 명명해야 합니다. 이는 주택을 빌려 쓰고 있는 국민 45%가 자신의 이름과 지위를 되찾는 일입니다. 


상인들이 상가를 10년 안에서는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것처럼 세입자도 주거계획을 세울 수 있게. 빌라나 연립주택에서도 입주자회를 꾸릴 수 있게. 불법건축물은 임대시장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도록. 주거권을 소외받은 이들은 국가로부터 주거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우리 스스로도 권리인지조차 몰랐던 기본적인 삶의 권리를 되찾자는 것입니다. 


# 세입자를 포괄하는 민주주의는 세입자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빌려 쓰는 사람들을 민주주의 구성원으로 여기는 것은 단지 세입자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모멸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 모두가 존엄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한국에서 집과 관련한 인간적 선의나 배려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집값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현명함이 되어버린 사회, 나만 손해 보는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공동체 내에서 행해졌던 폭력과 배제의 울타리를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집을 가진 사람, 가지지 않은 사람 모두가 각자의 존엄을 되찾는 일입니다.  


# 30년의 낡은 울타리를 넘어서 새로운 존엄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30년 전, 부모님세대가 살아온 삶의 기준과 노력들을 존중합니다. 집을 가져야만 안전한 사회, 결혼을 해야만, 정규직 직장을 가져야만, 4인가구가 되어야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 지금도 이야기 합니다. 기존의 울타리가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는 기존의 울타리를 구축했던 어머님 아버지 노력들이 비단 기성세대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물려주고자 하는 바램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1·2인가구가 전체 가구의 절반이 넘고 집은 노동 소득으로 구입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법률혼이 아닌 방식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관계 맺고 돌보며 살아갑니다. 정규직이 아닌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65%에 달하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집을 물려주는 것이 안전망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미래세대를 위한 가장 좋은 유산은 값비싼 집이 아니라 모든 삶의 형태가 존중받는 사회 그 자체입니다.  


#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기준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기준을 만드는 힘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30년의 낡은 울타리를 넘어서 새로운 존엄의 울타리를 구축합시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는 사회, 집을 가지지 않아도 모멸 받지 않는 사회, 혈연 가족이 없어도 노후가 불안하지 않은 사회를 상상해봅시다. 어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존엄하게 사는 사회 상상해봅시다. 우린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고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 첫 걸음을 저는 집이 없는 사람과 함께 시작하겠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이 첫걸음은, 나아가 사회 전반의 기준을 바꾸어가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정치, 다음 세대의 정치가 해야 할 일입니다. 


# 더불어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고자 합니다.

저는 현 정부의 주거정책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존중과 노력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노력들이 국민들에게 가 닿을 수 있도록, 성공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대물림 되어온 불안, 그리고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부재로 이것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저는 이 가로막혀 있는 것을 걷어내고 싶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주거복지로드맵을 최초로 수립한 정부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계획이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여 주거로 큰 괴로움을 겪고 있는 많은 국민들의 삶을 나아지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이것이 새로운 사회의 기준을 구축할 초석 되게 하고 싶습니다.

 

저는 집 없는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집 없는 사람들의 동반자로써 이제껏 현장에서 국민의 손을 맞잡아 왔습니다. 이제는 조금 다른 길 위에 서 그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국민은 45%가 집 없는 사람임에도, 국회의원 중 단 12%만이 집이 없는 사람입니다. 세입자 문제를 자신의 의제로 다루는 국회의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세입자 의제로 당선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입법 현장에서 집이 없는 사람들의 삶과 목소리가 필요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주거문제를 풀기 위해선 더욱 필요할 때입니다. 


저는 이번 21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경선에 출마합니다. 길 위에서 함께 해왔던 집 없는 국민의 삶과 목소리를 이제는 국회를 통해 삶의 변화로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제가 입법부에서 일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함께 입당을 결심해준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저의 정치를 손 내밀어 맞이해준 더불어 민주당,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의원 및 당원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