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사회투자기금 최종심사를 통과하였습니다

2014-11-19

어제 사회투자기금 최종심사를 통과하였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 쓸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두 번째 주택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건물 전체를 빌려 조합원에게 공급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민달팽이 마을을 만들겠다던 그 설렘과 설렘으로만 지속하기는 어려웠던 시간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의 노력들, 참아야 했던 많은 것들, 지난하고 길이 잘 보이지 않았던 시간들 그리고 울음들이 있었습니다.


2012년 겨울. 전국세입자협회를 만들자고 참여연대에서 회의를 마치고 경복궁 골목길에서 뒷풀이를 하던 그때. 그리고 위키서울 아이디어 대회 펀딩 마감 날이기도 했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후배에게서 술에 취해 걸려온 전화가 왔고. 자기가 오늘 꼭 돈을 보내려고 했는데 들어오기로 했던 과외비가 늦어져서 오늘까지 못 보냈다고. 미안하다며 어떡하냐고 울었던 그때. 너가 미안해 할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그때 왜 그리 눈물이 났었는지 전화기를 들고 한창을 서성였던 그 골목길이 생각납니다.



안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던 그때 될지도 모른다며 어리석음으로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우직한 어리석음이 작지만 이렇게 무언가를 만들어갑니다. 몇 날 밤을 지새우고,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전화와 문자를 돌리고 어디 뭐라도 찾으면 될 것 같다고 설레 했던 시간들과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위키서울 컨테이너, 경의선폐선부지, 가족의 탄생, 갈현동·홍은동 공공주택, 진관동 미매각 용지 검토 등의 혹자의 표현으로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경험들을 하며 지금에 이르렀고 올해는 지자체와 정부에서 사회주택을 주제한 토론회를 진행되고, 지난달에는 홍은동 청년 협동조합형 주택이 공급되었습니다. 몇 일전엔 서울시의회에서 사회주택 조례 제정을 위한 공청회까지 열렸습니다. 작년만 해도 사회주택에 대한 논의는 미미했고, 그 전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스꽝스러운 아이디어로 여겨지기도 했던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청년이 그것을 한다는 것은 더욱 그랬습니다.


세상에 발 내밀며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가 너무도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이렇게 왔습니다. 도움을 받지 못한 이는 평생에 걸쳐 훨씬 더 많은 주거비를 내고도 안정적인 공간에 거주할 수 없지만, 자산을 가지고 시작하는 청년은 안정적인 거주공간을 마련할 뿐 아니라 자산을 축적해 갈 수 있습니다. 돈 많은 부모를 선택할 순 없지만 누군가가 혹은 어떤 단체가 그 부모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그래서 자산이 없이 사회에 발 딛는 누군가도 보금자리로의 집을 꿈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것이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이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고자 하는 것이 있고, 지키고 싶은 것이 있으면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가능성의 확률로만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잔혹한 현실을 만든 것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고, 동시에 작은 희망들을 만들어 내는 것도 사회구성원들의 의지입니다. 우리 사회는 민달팽이 집을 허락했고 그것은 집에 대해 하고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하고자 함은 집을 ‘좌절의 매개가 아닌 누구에게나 보통의 것으로의 집’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제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들의 노력의 총합이었습니다. 나도 많이 기뻤습니다. 이런 일로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기뻤고 개인적으로도 진행되는 과정에서 감당해야 했던 긴장들을 이제는 매듭지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간 고생하고 마음졸였을 민달팽이 식구들과 조합원들, 많은 도움을 주셨던 진남영 박사님과 이재준 소장님 그리고 총괄해서 준비했던 계란이에게 특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