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논란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듭니다.

2015-11-23

최근 논란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듭니다. 처음엔 정책 자체를 놓고 경합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책적 경쟁이라고 보기엔 설명되지 않는 어떤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 토론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금요일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의 말을 보면서 문득 몇 년전 일이 떠오릅니다. 김용남 의원은 청년수당을 놓고 “결국 청년수당은 청년들에게 용돈을 주겠다는 예긴데, 시의 예산을 인기 관리를 위해 낭비해선 안된다” 이어 “청년수당의 경우 계획서를 제출한 후 월 50만원씩 받아서 실제로 구직활동을 위해 쓰는지 아니면 데이트에 쓸지 알 수 없고, 혈세로 마련된 돈을 선심성으로 쓰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마치 한 가부장적 전통이 남아있는 가족을 떠오르게 합니다. 한 부모가 자식에게 말합니다. “너에게 학원비는 줄 수 있지만 현금을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학원비는 학원등록으로 확인이 되고 너의 미래(구직활동)에 도움이 될테지만, 내가 벌어온 혈세와 같은 이 돈을 너에게 현금으로 주면 너가 어떤 일을 할지 모르고 그 일은 너의 미래에 도움이 안될 가능성이 높으니 용돈은 못주겠다.” 그리고 이어 ‘어른’들은 이야기 합니다. “애들한테 용돈 주고 그러면 버릇 나빠집니다. 돈 벌 생각을 안할 수도 있어요”


몇 년전, 서대문구에 40명 규모의 대학생 기숙사를 짓기 위해 열린 공청회가 생각납니다. 어느 한 50대 중년의 남자가 ‘왜 청년이 들어오면 안되는지’를 피피티로 설명하며 자신은 기숙사 건립을 반대한다고 하였습니다. 청년은 혈기 왕성한 나이기 때문에 유흥가로 만들 가능성이 있고, 모텔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러브호텔 사진을 보여주며 열을 올렸던 ‘어른’이 있었습니다. 안양 국토연구원에서 열렸던 행복주택 공청회에선 목동주민이라 밝힌 한 어머니가 ‘내 아들이 이름 모를 청년 3명에게 맞았는데, 행복주택이 들어와서 또 그러면 어떻게 할꺼냐고’ 소리쳤고, 그 어머니를 말리며 ‘짓지 말자는 게 아니라 여기(목동)에 짓지 말자는 것이다’라고 부연설명을 해준 비상대책위 대표라고 밝힌 ‘어른’이 있었습니다. 이후 행복주택 목동지구는 취소되었고 비상대책위 활동을 열심히 했던 한 ‘어른’이 총선에 나온다는 이야기가 전해들립니다.


청년을 어떤 미성숙한 존재로 말하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을 어색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되려 당당하게 말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 ‘어른’들 앞에 청년은 미성숙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위험한, 그래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보입니다.


저는 그것이 일종의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편견은 누군가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사실일지는 몰라도 지금 이 시대의 청년의 삶을 보여주는 진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혹여 그것이 편견이 아니라 진실이라 주장한다 해도, 그 진실은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 속에서 확인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따지기 이전에. 청년에 대해 우려는 표하는 ‘어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정말 당신의 자녀에게 현금이 생기면 일 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작 6개월 지원을 받는 것으로 무슨 수로 일을 안합니까. 친구를 만나려고 해도 돈이 들고, 고시원에라도 자려면 돈이 들고, 편의점에 삼각 김밥을 먹어도 돈이 들고,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독립해서 살려면 사는 것 만으로도 한달에 80~100만원은 드는 세상에서 무슨 수로 돈을 안벌겠다는 생각을 합니까.


돈을 벌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제대로 벌기위해 이러는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잘하는지 다 알진 못해도 찾으려 노력해본 기억은 있어야 일을 제대로 할 것 아닙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 교육을 받든 받지 않든 끊임없이 해야 할 것들 앞에서, 대부분의 청년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한번도 제대로 질문받지 못한채, 쫓기듯 살아와야 했습니다. 


자신에게 질문의 시간도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한채 무슨 밑천으로 일을 잘 해 나갈 수 있을까요. 질문의 시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집에 태어났다면 그건 다행입니다.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면, 그리고 그것이 점점 더 보편화되고 있다면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려고 이 사회가 있는 것 아닙니까. 젊은 시민이 자신의 역량을 키워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지지해주는 것 그래서 잘 할 수 있는 것을 키우고, 해보지 못했던 것을 시도하게 하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사회의 전체 역량이 성장하게 하는 것. 그것이 사회의 역할이자 바로 국가의 역할 아닙니까.


그래도 혹여 ‘미성숙한’ 청년에게 직접 지원하는 것이 그래도 걱정이라면, 다시 묻고 싶습니다. 청년을 미성숙한 ‘아이’로 남기면 누구한테 좋은 것입니까? 도대체 무엇이 좋아집니까?


젊은 시민을 ‘지지’하기보다는 ‘의심’하고 ‘자립적 존재’로 여기기보다 다시 ‘의존적 존재’로 만들어서 좋아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가르치려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남겨두게 되면 무엇이 좋아집니까. 오히려 걱정이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자식들을 데리고 살아야 할지, 언제까지 취직준비를 도와야 할지, 더 걱정스럽지 않으십니까.


계속하자는 것도 아니고, 모두에게 그러자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어려움이 있고, 그리고 지금도 그 시간이 너무도 절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라도 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에게 자신을 위해 잠깐이라도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입니다.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정책에 비해 그리 큰 돈도 아니고, 현금을 주는 것이 처음있는 일도 아닙니다. 조금 바꾸어 해보자는 것입니다.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일입니다.


단 6개월이라도 컴퓨터자격증이 아니라 컴퓨터 자체에 대한 공부를, 토익점수가 아니라 해보고 싶었던 영어 공부를 해볼 수 있게 해보자는 것입니다. 혹은 아르바이트 하느라 쫓기듯 공부해야 했던 친구에게 컴퓨터 자격증, 토익 공부 한번 충분히 해볼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아직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 꼭 가고자 했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것, 그리고 대단한 취미는 아니지만 그것을 한번 해보는 것은 이야기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청년’은 다른 시민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자녀이고, 부모이며, 동료이자, 애인으로 이 땅의 삶을 살아내려는 동료 시민입니다. ‘청년’의 문제를 풀자는 것은 어디 외계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청년의 삶은 다른 시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청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사회에 소외된 이들이 겪고 있는 공통의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공동의 노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청년 역시 이 사회를 만들어온 구성원입니다. 정책적 의견을 모으는 토론의 장에서 어린 시민과 나이든 시민의 구분은 차별적입니다. '청년'이라 불리는 젊은 시민은 다른 모든 시민과 마찬가지로 어리거나 미성숙하지 않으며 누구와도 함께 이야기 나누고 토론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 사회 구성원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청년정책의 논란은 '포퓰리즘', '박원순', '젊어서는 고생을 사서해야' 등의 논란을 넘어 '청년에게 정책이 정말 필요한지 아닌지', 필요하다면 '지금 청년에게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부족한 것을 메우고, 더 좋은 방안을 찾기위해 지혜를 모으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이번 논란이 불필요한 편견에서 벗어나, 시민과 시민이 만나는, 그래서 ‘아이’와 ‘어른’이 아닌 동료 시민으로 함께 토론하고 협의해 가는 소중한 경험의 계기로 나아가길 간절히 바랍니다.